젊은 예술기획자들을 중심으로 한 대안공간, 비영리 전시공간이 주를 이뤘던 홍대에 최근 갤러리들이 잇달아 문을 열어 화제다. 신진 작가 중심으로 작게 문 연 기존의 미술공간들과 달리 새로 문 연 갤러리들은 크고 쾌적한 규모를 갖추고 신진 작가와 중견 작가를 아우르며 흥미로운 전시를 선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명 전시를 찾아 멀리 떠나는 것도 좋지만, 따뜻한 봄 홍대앞의 갤러리로 미술 순례를 떠나보면 어떨까.

콜렉터, 아티스트, 갤러리의 아름다운 균형을 꿈꾸다
비트리 갤러리 B-Tree Gallery

봄이 오는 3월, 홍대 정문 옆 홍문관 1층에 비트리 갤러리가 오픈했다. 비트리 갤러리는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오페라갤러리, 카이스갤러리 등 10년 넘게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로 경력을 쌓아 온 정유선 대표가 오픈한 공간이다.

해외로 나가서 일할까 아니면 다른 갤러리나 예술기관에서 더 경력을 쌓아야 할까를 고민하던 즈음 만나게 된 이 공간은 ‘언젠가는 나만의 갤러리를 운영해야지’라는 정대표의 꿈을 앞당겨 실현하게 된 도화선이 되었다고 말한다. “지인의 소개로 이곳을 봤는데, 확 트인 구조와 위치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전에도 갤러리(최정아갤러리)로 운영된 공간이라는 것도 좋았고요. 돌아와서도 이 공간이 계속 생각났고 그렇게 생각보다 빠르게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갤러리를 오픈했고 3월 14일, 개관전을 열었다. 개관전 타이틀은 ‘균형잡힌’(‘balanced’).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세 장르인 회화, 사진, 조각을 균형있게 한자리에 모았다는 전시 취지 위로 미술계의 세 꼭지점을 맡고 있는 작가, 콜렉터, 갤러리가 제 역할을 다하며 균형을 이뤄야 미술계의 질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정대표의 지향이 포개졌다.

개관전에는 이경미, 이명호, 이환권 세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반려묘’인 나나를 주인공으로 캔버스가 아닌 자작나무 합판 위에 그려 입체감이 두드러지는 매혹적인 유화 작업을 선보여온 이경미 작가, 철학적이고 시적인 ‘나무’ 사진 연작으로 장 폴 게티 미술관, 빅토리아국립미술관, 암스테르담 사진미술관 등 유수의 해외 미술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명호 작가 그리고 사람을 길게 늘리거나 납작하게 표현하여 착시를 일으키는 설치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환권 작가의 작품이 화랑을 빛냈다.

“제가 큐레이터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해온 선생님들이세요. 정말 좋은 작품들을 꾸준히 작업하는 작가들이고 해외의 반응도 정말 좋은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모두 40대라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이들을 하나의 스펙트럼처럼 묶어 소개하고, 그분들의 좋은 작업이 시대와 반응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해외 아트페어 진출과 전시 교류에도 힘을 기울이고 싶고요.”

사실, 갤러리의 주 고객인 콜렉터에게 비주류 예술공간에 가까운 홍대는 그리 가깝지도, 그리 매력적이지도 않은 동네에 가깝다. 대부분의 화랑은 청담동이나 강남 등지에 몰려 있다. 여기에 대해 정대표는 “조금 다른 분위기에서 작품을 보는 것이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겠죠. 또한 연남동이나 연희동의 미술공간들과 연계된다면, 해외의 고객들에게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한다.

다가오는 5월 중순에는 배준성 작가의 개인전을, 7월에는 아트 퍼니처와 예술의 만남을 기획중이라는 비트리 갤러리. 아티스트와 콜렉터와 갤러리가 균형을 이루며 상생하기를 꿈꾸는 비트리 갤러리가 그 이름처럼 이 척박한 땅에 뿌리를 잘 내려 아름다운 숲으로 성장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글·사진: 정지연
원문보기: https://street-h.com/magazine/102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