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눈앞에 생생한 장면을 그린다. 인상 깊은 그림을 볼 때면 그림 뒤 숨어 잇는 서사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글에 빠져들면 책을 덮을 겨를 없이 계속 직진하며 달려가고, 전시장 작품 앞에서 매료되면 발길을 때지 못하고 오래 서 있게 된다. 글과 그림은 시공간을 상상하고 구축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렇게 서로 어긋날 것 같은 두 매체를 함께 다루는 미술가가 있다. 김영글의 작품은 영상, 설치, 사진 등 현대미술의 주요 방법들로 구성되면서도 그 얼개는 문학적 상상력이나 글 쓰는 행위에 관한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책으로 묶여 나올 만큼 성실한 기록은 이미지에 언어적 상상력을 더하면서 파편으로 사라질 장면을 붙들어둔다.
-더 네이버 4월 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