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아름다움의 의미
Editor. 이지윤
세상에는 갖고 싶은 물건이 너무 많다. 눈부시게 빛나는 백화점 쇼윈도 속 신상 옷과 가방, TV광고에 등장하는 매끈한 자동차, 수시로 들여다보게 되는 인터넷의 신상 전자제품까지 온통 탐나는 물건투성이인 세상이다. 이미 갖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쓸모없는 것도 많지만 늘 새롭고 더 나은 뭔가를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이다. 황세진 작가의 그림 속에는 그런 물건이 가득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기 그지 없는 꽃무늬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인물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아찔하게 높은 하이힐과 가방, 각종 장식품, 고가의 외제 스포츠카가 있고, 강아지나 고양이도 명품 스카프 하나쯤 두르고 등장한다. 색상마저 채도가 높고 패턴은 어디서도 본 적 없을 정도로 현란하다. 단 음식도 정도가 지나치면 쓴맛이 느껴지는 것처럼 화려함의 극치가 때로는 인공적이고 압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어떤 작품이든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과 정성이 소요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황세진 작가의 작품은 작업 시간이 유난히 길다. 작게 조각낸 천을 하나씩 오려 붙이고, 그 위에 아크릴로 음영과 채색을 더한다. 큰 작품 하나에는 천 200~300종이 사용되고, 조각 수만 2,000~2,500개에 이르는 세밀한 작업이다. 의도적으로 모든 물건에 꽃무늬를 넣은 것은 아름다움의 의미를 되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정의하는 자연의 대표적 소재가 꽃이다. 꽃을 인위적으로 디자인하고, 제작한 것이 꽃무늬 천인데, 작가는 그 자체가 이미 변형된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 만연한 물질에 대한 끝없는 집착과 갈망을 극도의 화려함으로 표현했다. 정작 작가 본인은 갖고 싶은 물건을 그려 넣는 고된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물욕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인고의 시간 끝에 탄생한 작품과 명품 가방 하나는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은 순간이자 전시 제목인 ‘채움의 미학’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또 황세진 작가의 그림 속에는 과거와 현재,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 ‘The Devil Wears Flowers'(2020)에서는 한복을 입은 여인은 인기 명품 백을 들고 있고, 주위에는 수많은 옷과 구두가 바닥부터 인물의 머리 위까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다. ‘광화문(狂花門)’은 본래 한자 대신 ‘미칠 광(狂)과 ‘꽃 화(花)’를 써서 우리에게 익숙한 광화문 앞에 여러 욕망의 산물을 배치했다. 심지어 ‘Delusion of Cinderella'(2020), ‘Delusion of Snow White'(2020)처럼 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오는 공주도 주인공이 된다. 신데렐라 앞에는 공주의 상징인 유리구두, 현대판 왕자님이 타고 올 법한 하얀 스포츠카, 꽃병으로 변한 호박마차 등이 있다. 너무 아름다워서 불편하기도 한 작품은 현시대의 진정한 아름다움의 기준과 소유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여기에 공들인 작품을 꼼꼼하게 감상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황세진 작가의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싱가포르, 대만, 두바이 등 해외 아트페어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잇다. 개인전 <채움의 미학>은 9월 18일까지 홍대 비트리 갤러리에서 열린다.
-SAMSUNG CARD MAGAZINE O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