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질에 대한 고찰과 멍때리기에서 출발

무엇인가 미묘하지만 캔버스(판넬)를 걸지 않고 바닥에 (엇비슷하게) 놓고 평면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조원아 작가의 경우가 그렇다.
작업은 캔버스를 골반정도 높이 책상에 놓고 작업한다. 캔버스를 세워놓고 작업했으면 지금의 밀도나 디테일이 나오지 않았을 듯하다.
작업 조건이나 과정에 대한 이해가 조원아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3년여 전부터의 작업인 resonance(공명) 시리즈의 모티프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찰과 계속되어야 하는 일상, 중간 중간의 멍 때리기에서 시작되었다.
도심의 강이나 천의 흐르는 물은 도로 아래, 지하철 교각 다리 아래를 가로지르며 흐른다. 무심히 바라보던 작가는 동심원을 이루며 퍼져 나가는 물의 파장(파문, 波紋)에 마음이 끌렸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듯 몸부터 먼저 움직였다. 논리와 생각의 틀을 갖추고 나서 행위로 옮겨 무언가를 구현하려면 영감을 놓칠 듯 해서이다.
구상에 적합한 재료를 찾는 등 비주얼 작업을 하면서 이내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현상에도 관심이 옮겨갔다.
작업은 정형의 반복되는 패턴의 이미지뿐 아니라 비정형으로도 나타난다. 조원아 작품의 특징인 화폭에 반복되는 파문의 패턴에서 물리 현상을 보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특수상대성이론 공식 ‘E=MC²’에서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광속이다. 물체가 질량을 가졌다면 그만큼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 반대로 파동이나 빛과 같은 순수 에너지가 입자로 변환될 수도 있다. 에너지는 비물질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조원아 작품에서 파문과 파동은 텍스츄어를 드러내고 시선에 따른 일루젼 (illusion)을 불러 일으킨다.
대부분의 작업은 작가 내면에 흐르는 의식을 반영한다. 약 3년전부터 시작한 시리즈는 작가 어머니의 지병과 점차 악화되는 병세와 무관하지 않다. 소멸과 시작은 물결의 파문과도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작가는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존재이다. 화폭 속 공간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984)가 말한 비일상(非日常·한시적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 (Hétérotopies)이다. 실제 위치를 갖지만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이다.
화폭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이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 사이 균열과 틈새를 종이 실로 꽁꽁 싸매어 봉합, 정지시킨다. 생의 출발인 흔적과도 같은 화폭의 기준선을 묻어버리려는 행위이다.

.
.
.
중략
.
.
작가에게 ‘건다’는 의미는 기차가 중간역에 들어선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조원아 작가에게는 캔버스 프레임을 활용한 작업 외에도 공공미술 영역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 봄직하다.
출처 : 뉴스버스(Newsverse),2023.01.15 11:03, 심정택 칼럼니스트
원문보기: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2853